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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선착장

 

말목장

장봉도,신도, 시도등은 옛날부터 토질이 비옥하고 초지가 많은 곳으로
목장.적지로 조선초 세종(18년) 나라에서 국영 목장을 설치하고 말을
사육하였다고 하며주위에 석축을 쌓고 말을 사육하였으며 책임자로 감목관을 두고 목자를 두어 사양하였는데 봄, 여름, 가을에는 말을풀어 놓아 먹였으며 겨울에는 목초 또는 것보리 등 을 사료로 하였으나 그 당시 말은 현대의 각종 차량과 같이 중요한 것으로 24개월을 사육한 성마는 검사를 하여 어마(왕이 사용하는 말),군마, 역마, 하역마등으로 구분되여 요소에 배치하였으며, 고종 21년에 장봉도에서 사육하던 말이 224필, 시도에서는 77필이 있었고 감목관은 본진장이던 윤창업이 이를 관리하였던 기록이 왕조실록에 나온다. 이 목장은 1884년경 지역지방사(경기지방 해군사령관) 민영목의 건의로 정식으로 폐지되고 말았으며 그 후 이 목장은 개간하여 농지로 이용하고 있으나 아직도 목장 자리임을 알 수 있는 성지가 잔존하고 있다.
이곳 목장은 약450년간을 존재하였던 유적지로서 지금도 장봉2리 산중턱을 주민들은 쉬었다가는 곳으로 말문고개라 칭하고 있으며 신도 지역에는 말과 소를 길렀다 하여 마장, 또는 우장이라고 현재까지 불리워오고 있다.

구로지

오랜 옛날 아홉 노인이 강화도에서 낙향하여 배를 타고 이곳에 건너와 정착하면서 고기를 잡았으며 생계에도 여유가 있어 이곳에 아홉 노인이 정착하였다하여 아홉(九)자와 노인(老)자와 땅(地)자를 따서 구로지(九老地)라고 불리워 오고 있다.

절 골

신도2리 고남리 중턱에 위치한 골짜기로 부락 주민들의 액운과 부귀영화를 위해 지나가던 중이 이곳에 절을 짓고 불공을 드렸다 하여 절골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염 촌

조선왕조 말엽(임오년 1882년)부터 가마솥을 이용 바닷물을 끓여 화염인 벗소금을 제조 하였다하여 벗마을이라고 불러 왔으며 그후다시 "평촌으로 불리우다가 장봉지역에도 평촌이란 마을이 있어 해방후 옛날지명 그대로 소금(鹽)자와 마을(村)자를 따서 염촌이라 부르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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